금속노련 충남세종지역본부
[(주)윤영 노조] ‘로드맵’ 어떤 ‘길’로 가야할까
“시간적 여유 필요” 공감대 형성…“정부 일방 추진 안돼”
선별적 처리 ‘먼저 일자리부터’ 등 제안
올 한해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은 어떤 ‘길(road)’로 가야 할까.
참여정부 들어 노사관계 개혁을 위한 과제 가운데 하나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이 지난 9월 중간보고에 이어 12월 최종안이 나왔다.
노동정책과 관련, 상당한 기대를 안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첫 작품이었던 만큼, 노동계 안팎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로드맵’은 노사 모두에게 강한 반발을 샀다. 노동계는 “사용자 대항권이 강화됐다”, “노조의 파업을 무력화시키는 안”이라며 비난에 나섰고 경영계도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함으로써 경제의 어려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노조와 사용자간 형평성과 공정성이 결여돼 수용할 수 없다”고 비판을 가했다.
노사정위로 넘어온 ‘로드맵’ 논의가 올 상반기까지 진행될 예정이지만 이처럼 노사 입장 차이가 워낙 커 합의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더구나 민주노총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논의 진행에 있어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 당사자가 아닌 제3의 위치에 있는 학자들이 모여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추진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마련돼 관심을 모았다.
한국노사관계학회(회장 이원덕)와 한국노동교육원(원장 안종근)이 9일 주최한 토론회가 그것. 특히 이날 토론회에는 ‘로드맵’을 만든 노사관계제도선진화연구위원회(선진화연구위) 임종률 위원장이 발제에 나섰으며 선진화연구위 멤버인 학자 4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 밖에 산업연구원 박태주 연구위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부소장, 한국방송통신대 박덕제 교수가 토론에 나섰다.
선진화 방안 평가 엇갈려
“선진화 방안을 마련함에 있어 그동안 노사 양측의 주장과 노사정위 논의내용을 재확인했다. 또 선진국 입법례와 ILO 등 국제노동기준 등을 참고해 중립적 입장에서 숙고를 거듭했다. 한 마디로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임종률 위원장)
선진화 방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토론자 대부분이 “부족한 지점이 많다”라는 것에는 입장을 같이했지만 선진화연구위 소속 연구위원들과 그렇지 않은 학자들 사이에는 의견 차가 있었다. 먼저 선진화 연구위원들은 ‘로드맵’이 ‘중립적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노동계와 재계의 시각에서만 재단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자신들이 만든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은 완성된 것이 아닌,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토대’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
연구위원들 상호간에도 의견이 분분한 경우가 많았으며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결국 다수결(연구위원 15명)에 의해 안이 모아진 만큼, 노사 모두가 이 방안에 찬성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다만 워낙 많은 과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내용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에 왜곡된 측면들도 많았다며 노사가 각각 불리한 안만 부각시키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와 관련, 선진화연구위 멤버였던 이철수 이화여대 교수(법대)는 “이 방안은 기본적으로 보편적 노동기준에 부합하고 노사관계에서 ‘자율성’과 ‘책임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며 기존의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마련된 것”이라며 “결국 조정전치주의 폐지로 귀결되는 조정제도 재설계는 파격적 제안인데도 묻혀있는 게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선진화연구위 학자들은 노동계 비난을 받고 있는 비정규노동자 보호, 공무원노조 인정, 교섭구조 중층화 문제 등이 선진화 방안에 빠진 것은 노사정위 논의 결과를 존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중립적 내용”…“기계식 덧셈, 뺄셈”
이에 반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부소장은 비판의 ‘날’을 세웠다. 김 부소장은 “선진화 방안이 한국의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 속에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어떠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가라는 차원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노동행정의 연장선에서 각 조항별로 덧셈, 뺄셈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즉 김 부소장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는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만큼, 국제기준도 중요하지만 노동시장의 정확한 분석을 통해 실질적으로 어느 부분이 달라졌어야 하는지 접근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
예를 들어 한국의 노동시장은 수량적으로 충분히 유연하고 비정규직-정규직간 임금소득 불평등은 심각한 상태다. 또 노사관계도 10%대의 낮은 노조 조직률과 협약 적용률,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조 및 교섭 체계 등 극도로 분권화됐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급증하는 등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화 방안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개선 안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참여정부 초반 청와대 노사관계T/F 팀장을 맡아 노동정책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했던 산업연구원 박태주 연구위원도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박 위원은 “선진화 방안이 ‘자율적 노사관계 확립을 통한 사회적 대화구조의 정착’이라는 참여정부의 노동철학과 정책방향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며 “노사간 기계적 균형을 맞췄을 뿐인 것 같다”고 내용적 비판을 가했다. 또한 그는 지금과 같이 노사간 신뢰 기반이 붕괴된 상황에서 선진화 방안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선진화 방안 추진 방향은 어떻게?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의 추진방향에 대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서 선별적 처리, ‘선 일자리 만들기, 후 선진화 방안’ 논의 제안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선진화연구위 임종률 위원장은 우선 “정부가 노사 합의가 안 되면 이 안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 뒤 “갈등이 전혀 없는 아젠다(의제)는 있을 수 없는 만큼 적정한 시간을 갖고 노사가 선진화 방안을 논의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선진화 방안에서 다뤄야 할 쟁점이 30여 개에 이르는 등을 감안, 선별적 처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철수 교수는 “선진화 방안 가운데 시간에 쫓겨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사항도 있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며 “공론화를 거쳐 선별적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선진화연구위 멤버인 숭실대 조준모 교수(경제학)도 △전문적 논의가 필요한 의제 △노사간 합의가 필요한 의제 △단기에 타협이 가능한 의제 △중장기 계획으로 점진적 노력이 필요한 의제 등 로드맵의 과제들을 분리, 생산적인 논의체계를 구축해 가는 전략과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역시 선진화연구위 멤버인 건국대 조용만 교수(법학과)는 좀더 구체적으로 “적어도 ILO의 지적 등 국제적으로 문제돼 왔던 사항에 대해서 최우선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김유선 부소장은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에 성격규명부터 분명히 하고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소장은 “선진화 방안이 공익 위치에 있는 선진화위원들이 만들었지만 정부안 비슷하게 인식되고 있어 일정한 규정력을 갖고 있는 만큼, 대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선진화 방안은 노사정 논의를 진행함에 있어 참고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노사정이 ‘로드맵’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의세 설정부터 다시 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노사가 일자리 만들기 논의로 신뢰를 쌓은 뒤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태주 연구위원은 “현재와 같이 노사 신뢰가 허물어진 상황에서 선진화 방안을 논의하면 노사 대립만 조장될 것”이라며 “선진화 방안은 자율적 노사관계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 늦추고, 우선 노사정의 공통적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 일자리 만들기 의제를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이어 “선진화 방안이 입법화에 성공하더라도 그것이 노동현장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주체들의 참여 속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루는 것이 돌아가면서도 빨리 가는 길”이라며 민주노총의 참여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맥락에서 박 위원은 ‘일자리 만들기’ 논의에 민주노총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면 적어도 문이 열려있어야 한다며 “(일자리 논의를) 노사정위 바깥에서 시작하되 일정한 시기에 노사정위 내부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관인으로 참석한 한 학자는 “선진화 방안 얘기만 나오면 어디로 갈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노사도 그렇지만 학계에서도 선진화 방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첨예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노사정위원회는 12일 상무위원회를 열고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과 관련, 논의 방법과 논의 단위 등을 결정할 예정이어서 상반기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장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시간을 갖고 대화하자” 등 다양한 제안들이 이후 선진화 방안 논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